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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한국 축구의 진땀승, 추격자가 된 중국 축구

SBS Sports 이은혜 | 2016-09-02 02:15:53
이미지결과는 이겼지만 내용까지 모두 이겼다고 단정하기는 힘든 경기였다. 역대 전적을 돌이켜 봐도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이 중국과의 경기에서 이토록 혼쭐이 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단순히 '쓴 약'을 처방 받았다며, 그저 상처를 보듬고 돌아서기에는 무척 찜찜한 경기 내용이다. 2015 아시안컵부터 그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있는 중국 축구, 더 나아가서는 점점 더 격차가 좁아지고 있는 아시아 축구의 상향 평준화 현상에 한국 축구는 여전히 그리고 조금 더 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A조 1차전 경기에서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중국에 3-2 아쉬운 승리를 기록했다. 승리는 승리고, 승점 3점을 가져갈 수 있는 것 역시 승자다. 아무리 경기 막판 2골을 몰아치며 분전했다 해도 중국이 승점 없이 빈 손으로 자신들의 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 날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상대에게 경기를 주도할 '페이스'를 후반 막판까지 쉽게 내주지 않았다. 전반 초반 한국과 중국 양 팀이 다소 탐색전을 벌이는 시간은 존재했을지라도. 그리고 전반 21분, 만족스러운 타이밍에 우리 대표팀의 선제골이 나온 뒤에는 더욱 '하프 코트 게임'으로 경기 양상이 굳어져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의 중국전 승리는 3-2 짜릿한 승리가 아니라 아쉬운 승리였다는 점에,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이 날 최전방에 지동원을 세우고 그 뒤를 손흥민, 이청용이라는 수준급 자원의 양 날개로 받친 슈틸리케 감독의 작전은 꽤 이른 시간부터 적중해 들어갔다. 데이터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 1일 중국전에서 터진 우리 대표팀의 세 골은 모두 손흥민, 지동원, 이청용의 기민한 움직임에서 나왔다. 세번째 골 장면에서 무섭게 쇄도해 들어가 득점의 주인공이 된 구자철이나 여전히 노련하게 공수를 조율한 기성용까지 대부분의 선수들은 90분 간 나름의 역할을 해냈다. 중국의 빡빡한 밀집수비가 자칫 우리 대표팀이 원하는 대로 경기를 풀 수 없는 '질식' 상태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표팀은 선제골 상황에서 손흥민의 프리킥이 사실상 거의 그대로 골문을 향하는 그 순간 아직은 한국 축구의 수준이 중국으로서는 손 쓰기 힘든 한 단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상대 기선을 제압했다.

사실 중국 축구 대표팀은 예전부터 '느리다'는 오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 축구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그간 중국 리그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은 그렇게 엄청난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축구선수 '11명'이 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중국 선수들의 근성 부족, 그리고 안이한 경기 태도를 꼽곤 했다.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한국과의 31번째 A매치에서도 중국 축구의 그 근본적인 이미지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첫 골 실점의 빌미가 된 중국 베테랑 자원 정즈의 흔들린 집중력이나 오재석, 장현수가 공략해 낸 중국 수비진의 느린 뒷공간 커버 능력은 중국 축구가 그토록 염원하던 한국전 두번째 승리를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미지더욱이 우리 대표팀은 1-0 리드를 잡은 뒤에 '한 수' 위의 팀 답게 우리가 원하는 페이스대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무작정 두번째 골을 넣기 위해 서두르다 실수를 범하는 장면도 많지 않았고, 상대 약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우리 대표팀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줄기차게 시도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아시아 축구는 지난 몇 년 사이 눈에 띌 만큼 평준화됐다. 일례로 우리와 최종예선 같은 조에 속한 카타르까지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게 되면서 아시아 축구 경쟁구도의 균형을 깨고자 이 곳, 저 곳을 두드려 보고 있는 와중이다. 우리 대표팀이 전 세계에서 오로지 6개국 밖에 보유하지 못했다는 월드컵 8회 연속 본선진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아시아 축구가 고르게 성장하지 않았던 '상대성'에 기인한 결과이기도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기에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을 덧붙인다면, 한국 축구는 설상가상으로 지난 수 십년 동안 선수들의 '투혼'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자국 리그 기반이나 축구 인프라가 크게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하나의 팀이 되면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상당 부분 국가대표라는 이름 앞에 모든 것을 내던지던 선수들의 정신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쌓고 또 쌓아 언제나 아시아에서는 정상의 위치를 호령해 왔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더 이상 태극마크 앞에 모든 것을 던지라는 무분별한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우리 대표팀에는 400억원의 가치가 매겨진 선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선수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A매치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마도 한국 축구계에 '프로'가 더 많아졌고, 우리 축구의 기반 자체가 이제 조금 더 많이 '프로의식'에 기대고 있기 때문일 터다. 우리 대표팀은 손흥민을 차출 의무가 없던 올림픽에도 호출하고, 또 불과 보름 만에 다시 A매치에도 호출하면서 많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런 까닭에 더 이상 A매치를 한 경기만 뛰게 하겠다는 대표팀과 토트넘의 협의를 비난하는 여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지점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에서 모든 면이, 모든 선수의 기량이 '한 수' 위인 수준을 자랑하는 팀은 아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만약 우리 대표팀이 독일이나 브라질처럼 어떤 상대를 만나도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는 팀이라면, 그리고 그런 압도적인 수준의 축구를 구사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전개될 지도 모른다. 또 아무리 상향 평준화 되어 있다고는 해도, 예를 들어 우리가 호주처럼 상대적으로 더 축복 받은 신체적 조건이나 타고난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 내에서 그런 독보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은 해외파 멤버들이 있는가 하면, 그 중에는 우리가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중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 지적은 단순히 중국 리그에서 뛴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수들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단지 그것이 객관적인 우리 대표팀의 자화상이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축구는 크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것들을 메워나가야 하는 와중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선수들의 '투혼'만으로 그런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9번째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고 싶다면 '2% 부족한 전력'의 허점을 어떤 식으로든 메워야 한다. 축구는 감독들이 벌이는 전술의 게임이기도 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벌이는 치열한 다툼의 경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 축구는 바로 승리를 향한 욕망의 게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팀은 그 굳건한 자존심만으로도 '한 수' 아래의 상대를 만나든, 그 이상의 위협적인 상대를 만나든 승리를 향한 욕망에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두 팀 간의 격차가 불균형한 조직력 그리고 개인기에 기대고 있을 경우에는 승자와 패자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뀔 수도 있다.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5만 명이 불과 2분 사이에 두 골이나 추격해 온 중국 축구의 힘에서 목격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미지재차 강조하지만, 한국은 아시아에서 브라질이나 독일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다고 스페인처럼 그 어떤 나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축구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가장 강력하게 대변해 온 전술적 특징과 이미지는 '투혼'이었다. 그 특성이 옅어진 지금, 많은 대표팀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아시아 축구계에서 일본이 빠진 것과 같은 혼돈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빈 자리를 대체할 또 다른 원동력, 그것도 가급적이면 기복 없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반드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슈틸리케호는 지난 2년 가까이 계속 되어 온 순항 동안 잠시 그 사실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막 다소 우월적 위치에 올라선, 불과 얼마 전까지도 지금의 중국 축구가 그렇듯 추격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 동시에 꾸준히 발전해 오기도 한 우리 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구심점의 부재'가 시급한 개선책임을 깨달았고, 2015 아시안컵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성장이 달라진 대표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간 동안 존재감이 컸던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년 가까운 부임 기간 동안 한국 축구의 이런, 저런 균열들을 큰 잡음 없이 보듬어 왔다. 선수들에게는 그들이 납득할 만한 실리적인 결단과 약속을 통해 신뢰를 얻었고,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팬들이나 언론과 같은 외부에는 완고하고 꼼꼼한 행동력으로 답하며 여러가지 균열들을 견고하게 다듬어 왔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 지난 6월 스페인전 대패를 제외하면 그리 큰 실패가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슈틸리케 감독이 중국전을 통해 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슈틸리케 감독 자신은 물론 한국 축구가 여전히 아시아의 '최고'가 아니라 함께 세계무대를 향해 경쟁하는 도전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자칫 방심하면, 팀의 목표와 방향성 그리고 선수들이 가져야 할 동기부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그간 노력해 봉합해 온 균열이 한 순간에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승리하는 팀은 선수들이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고, 팀이 하나의 믿음을 갖고 있다. 중국 대표팀 선수들은 비록 이번에도 가오홍보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경기보다 해답에 가까이 다가 섰다. 우리 축구가 지금까지 피 나는 투혼과 노력 끝에 이렇게 많이 발전한 것처럼 그들도 목표를 향해 발버둥 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객관적인 수준은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과의 경기 중에, 3-0에 점수 차에 도취해 조금은 방심해도 안심하고 승리를 지킬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한국 축구가 그랬던 것처럼, 추격자도 언젠가 승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 축구공이 둥글기 때문이다. 진정한 강팀은 어쩌면 그래서 승리에 도취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아직 90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도 울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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