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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리얼타임 레전드 손흥민, 더 간절해진 '꾸준함'

SBS Sports 이은혜 | 2016-09-27 17:04:29
이미지손흥민은 현재 한국 축구계에서 차범근, 박지성과 비교되는 유일한 선수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교'란 절대적인 비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 사람 모두 현역으로 활동한 시대가 각기 다르고, 플레이 스타일 역시 다른 유형의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2016년 지금 현재, 축구를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는 많은 축구팬들에게 손흥민은 차범근과 박지성이 그랬듯 '레전드'로 기억될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입니다. 소속팀 경기든, 대표팀 경기든 그의 플레이를 경기장에서 한 번이라도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더욱 동의할 만한 평가입니다.

역사적인 순간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스포츠 영역이 가진 특권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제어가 힘든 예술 등의 영역과 달리 스포츠사의 중요한 장면들은 대부분 인간의 의지로 한계를 극복한 순간들입니다. 운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노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선수들일수록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손흥민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재능입니다. 아무리 과정이 중요하다 해도 결과가 없으면 그 어떤 과정도 정당화되지 못하는 것은 스포츠에 내재된 가장 잔혹한 속성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소수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범한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재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재능 역시 피 나는 노력을 통해 끌어 올리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천재와 평범한 선수의 차이는 출발선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고도 하니까요.

2016/17 EPL 시즌 개막 한 달 여를 지나면서 손흥민의 주가가 그야말로 상한가입니다. 한국인 선수 중에, 그것도 공격수 포지션의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소속팀에서 3경기 연속 '맨 오브 더 매치(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장면은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손흥민이 언제나 시즌 초반이면,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여 왔다는 점입니다. 독일 무대에서도 그랬고,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뒤에도 손흥민은 시즌 초반 엄청난 임팩트를 남기며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는 패턴을 지켜 왔습니다. 시즌 초반이 팀의 전술적 완성도나 변수에 있어 상대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손흥민이 만들어 낸 결과들은 수준 이상의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직전 시즌인 2015/16 시즌 초반에도 손흥민은 지금 못지않은 활약상으로 큰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오랫동안 활약해 왔던 독일 무대를 떠나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입성하자마자,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썼던 표현 중 하나가 '손세이셔널'이었습니다. 아시아 선수가, 그것도 축구종가의 상위권 클럽으로 이적해 와 데뷔전부터 혀를 내두르게 하는 움직임을 선보이며 리그 첫 경기에서 골까지 기록한 사례는 축구종가 100년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흔치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손흥민은 이를 넘어선 '극찬'들을 끌어 내고 있습니다. 지면 매체인 영국 주요 일간지들은 물론 BBC의 개리 리네커, 스카이스포츠의 티에리 앙리, 제이미 래드냅을 비롯한 수많은 TV 해설진들이 손흥민의 경기력과 개인기량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3경기 4골 1도움은 객관적으로도 '호날두'나 '메시'급의 수치입니다. 더욱이 시즌 초반 이토록 파괴적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손흥민의 개인적인 능력이 유럽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거나 어떤 장면에서는 한 차원 다른 수준의 그것임에 거의 만장일치의 분위기로 동조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죠. 손흥민의 몸값이 400억 원을 호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이미지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경기장 안에서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1호' 해외파인 차범근 이전과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선수들에게, 아니 아시아 선수들에게 유럽 축구의 벽은 높았습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 등에서 수많은 해외파 선수들이 배출되었고 그중 박지성은 선배 차범근의 업적과 존재감에 가장 가까이 다가 간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성과를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이 배출한 나카타 히데토시 같은 천재적인 유형의 선수도 있었지만 현역 시절의 커리어를 가장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박지성이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서 경쟁하는 그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두 배, 세 배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합니다. 기량도 뛰어나야 하지만 시즌 내내 기복이 없어야 한다는 대목은 아시아 선수의 성공과 그 성공의 수준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차범근이 기량이나 꾸준함 모든 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에 가까운 선수였다면 박지성은 현역을 은퇴한 뒤 결과적으로 기복도 없이 꾸준했고, 기량 면에서도 대체할 선수가 많지 않은 자원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맨유에서 7년이나 뛰는 아시아 선수를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현역 시절 박지성의 가장 유명한 별명 중 하나는 '벤치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맨유와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그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박지성과 같은 유형의 기량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는 최정상급 선수가 얼마나 대체하기 힘든 자원인지 누구보다 뼈 저리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벤치에 박지성 같은 능력을 가진 선수가 언제나 '출전 가능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은 그 팀에는 어쩌면 행운을 넘어 축복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퍼거슨 감독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요.

이미 10대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 가 성장한 손흥민은 앞선 두 선수와도 다르고, 특히 한국 선수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량의 완성도나 기본기의 수준 자체도 그렇지만 그는 그 압도적인 재능을 '아시아' 출신이라는, 유럽 축구계에서는 어쩌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요소를 만회하는 데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 분석하면 기술도 뛰어난 데다, 승리를 갈망하는 욕망에 있어서도 그 어떤 선수보다 절박하며, 동시에 자신의 재능이 어떠한 값어치를 가지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어떤 경쟁 상황에서도 철저히 영리하게 움직일 줄 아는 선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능력이 뛰어난 선수, 다시 말해 '잘하는' 선수는 그가 아시아인이든 그 어떤 대륙 출신의 선수이든 최고의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J리그의 많은 선수들은 자국 축구계와 독일 분데스리가와의 끈끈한 커넥션으로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해외 진출에 성공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기량'과 실력만으로 살아남고, 인정받아 스스로의 몸값을 올린 것은 손흥민이 거의 유일합니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FIFA A매치 주간을 보내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 축구팬들조차 자국 대표팀 에이스인 가가와 신지와 손흥민을 비교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EPL 무대에서도 상종가가 이어지자 일본 축구팬들이 웹상에서 "손흥민은 이제 확실히 아시아에서 클래스가 다른 선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확인할 때마다, 손흥민의 시즌 초반 임팩트가 더 강렬해질 때마다, 그래서 더 간절해지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꾸준함'입니다. 아시아 선수로, 유럽에서 10년 넘게 살아남기 위해, 손흥민에게는 시즌 초반 반드시 자신의 존재감을 팀에 인식시켜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뚜렷한 각인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존 루틴은 매 시즌 진화해 이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위력을 입증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환상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라는 사실을 입증했는데 여기서 또 얼마를 더 해야 하느냐고 누군가 되묻는다면 진화도 거기서 끝일지 모릅니다.
이미지상대적으로 시즌 초반 상한가를 치는 데 익숙한 루틴의 손흥민이 아주 오랜 뒤에도 시대의 레전드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시즌 말미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기량을 유지하는 꾸준함이 필수적입니다. 경기를 들쑥날쑥 뛰면서 시즌 내내 최정상의 경기 감각을 유지하라는 요구가 선수에게는 극단적인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많은 유럽 감독과 팀들은 그런 모순을 결과로 요구합니다. 생존과 순위가 팀의 운명을 가르는 프리미어리그. 감독에게는 9월이나 10월에 골을 넣어주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순위 경쟁이 치열한 12월과 1월에 그리고 시즌 막판 가장 중요한 시기인 4월, 5월에 골을 넣어주는 선수의 존재감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해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월드 클래스'라고 부르는 선수들입니다.

손흥민은 지금 그 길목에 서 있습니다. 토트넘의 전술과 선수단 운영이 오로지 손흥민 위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그가 아시아 선수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손흥민은 월등하게 뛰어난 자신의 기량과 재능만으로 팀의 중심을 스스로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까지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손흥민이 언제나 팀의 중심에 존재하고 '리얼타임 레전드'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꾸준히 활약해야 합니다. 시즌 초반에 모든 임팩트를 시전하고 말미에는 기복을 겪는 선수가 아니라 '손흥민의 그 골로 토트넘이 그 시즌 리그 2위가 됐지'라고 팬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선수 말입니다. 박지성에게는 거짓말처럼 그런 골들이 있었습니다.

손흥민은 해리 케인이나 얀센이 아닌 아시아 출신의 선수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내기 위해 두 배, 세 배의 노력과 고난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선배 박지성이 맨유와 대표팀을 오가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부담과 압박 그리고 피로누적에 시달렸던 것 같은 상황들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월드컵이나 올림픽 무대에서는 '실패'만 경험한 것조차 손흥민에게 큰 자산일 수 있습니다. 이미 큰 성공을 맛본 동료들 보다 강한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시즌 초반에 잘하는 호날두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지만, 시즌 막판까지 잘하는 호날두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됩니다. 대단한 기량을 가진 선수가 흔들림 없이 꾸준히 활약 하기까지 한다면 사람들은 먼 훗날 차범근, 박지성의 이름과 함께 당연히 손흥민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요.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경기장 안팎의 잡음과 혼란들을 잠재울 수 있는 선수. 리얼타임 레전드인 손흥민의 도전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챕터에 접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꾸준함의 단계입니다. 성실한 천재는, 반드시 역사에 남게 됩니다.

[사진=Getty Images/이매진스]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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