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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개봉임박' 신태용호, 韓 축구 새 희망되길

SBS Sports 이은혜 | 2017-05-11 15:38:39
이미지2012년 여름, 당시 런던 출국을 앞두고 있던 차범근 현 FIFA U-20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 인터뷰 자리였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차범근 부위원장이 "이번에는 축구가 꼭 올림픽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하던 순간이다.

사실 한국 축구에 있어 '올림픽 메달'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인 목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2012 런던올림픽을 앞두고도 축구의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고 있던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역대 대표팀 전력과 비교해 최강에 가까운 선수 구성을 자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해도 불가능한 일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범근 현 U-20 조직위 부위원장은 그 인터뷰 당시 몇번이고 '올림픽 메달'의 실현 가능성, 그리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인 예측이라기 보다는 '반드시 그랬으면 좋겠다'는 강한 희망에 근거한 역설이었지만 그는 축구의 올림픽 메달 꿈을 이야기하는 순간이면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당시의 올림픽 메달을 향한 차범근 부위원장의 바람 그리고 강한 확신이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사실 '당연하게도' 그 뒤에 우리 축구대표팀이 '실제로' 올림픽 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 또 한 번 현실이 되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던 2002년의 체험을 살아 생전(?)에 두 번이나 하게 됐다는 소름 돋는 경험도 추가됐다.

그런데 사실 너무나 간절히 후배들의 올림픽 메달을 바라던 차범근 위원장의 바람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 바람이 꼭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하던 차범근 부위원장의 '확신'이 가진 근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축구도 올림픽 메달을 가져올 때가 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또 확신하던 차범근 부위원장의 바람 뒤에는 새로운 동기부여를 향한 절심함이 존재했다.

"2002년에 한국 축구가 정말로 세계 4강에 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 축구는 지난 10년 동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했다. 월드컵 4강 신화로 가장 큰 희망을 얻은 것은 선수들이다. 이제 우리 선수들이 유럽무대에서 뛰는 모습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후배들이 메달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그 일을 이루고 나면 우리 축구 전체가 또 한 번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
이미지그것은 후배들의 성공이 또 다른 후배들의,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 새로운 기적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자 바람이었다. 레전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그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통해 체험하고 확신한 굳은 믿음이 존재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강한 신념이기도 했다.

차범근을 보며 자란 수 많은 축구선수들은 언젠가 자신도 유럽무대를 누빌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꿈을 키웠다. 그 꿈이 박지성이라는, 이영표라는, 기성용이나 손흥민이라는 현실이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2002년의 기적을 통해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실제로 목격했고 이제 그 성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올림픽 메달 역시, 이제 한국 축구에는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월드컵 우승' 같은, 지금은 우스갯 소리에 가까운 꿈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만 그런 기적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차범근 부위원장이 강조했던 것처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동력이다. 엄청나게만 보이는 목표가 무형의 꿈이 아니라 유형의 결과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기적에 가까운 성과,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것은 차범근 같은 기적적인 개인의 존재일 수도 있고, 2002 월드컵 같은 역사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는 5월 20일, 우리나라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남자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개막한다. 남자 U-20 월드컵은 FIFA가 주관하는 수 많은 대회 중에서도 남자 성인 월드컵 다음으로 규모나, 중요성 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회다. 세계 축구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스타가 이 대회를 통해 탄생한다. 루이스 피구 같은 선수, 티에리 앙리 같은 전설적인 스타나 지금 축구계를 지배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도 빠짐 없이 이 대회를 등용문으로 삼았다.

누구보다 올해 U-20 월드컵의 성공을 바라고 있는 차범근 부위원장은 지난해 4월에 공식 출범한 조직위에 합류, 이번 대회의 성공을 위해 축구 행정가로의 '변신'도 주저하지 않았다. U-20 월드컵 나아가 유소년 축구의 성장이 한국 축구와 대표팀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그의 축구인생 자체에 각인되어 있는 기억이다. 차범근 부위원장이 현역 시절을 보낸 독일 축구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차범근 부위원장은 조직위가 주관하는 수 많은 행사에 함께하고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U-20 대표팀과 코칭 스태프들, 관계자들을 독려해 왔다. 당연하게도 공식적인 자리나, 사석에서나 차범근 부위원장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이야기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U-20 월드컵이었다.

2016년 말부터 불거진 국내외 정치적 상황으로 대회가 국민적 관심을 얻기에 더욱 힘든 상황이 계속 되자 그는 만날 때마다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줘야 할텐데…"라며 걱정의 끈을 놓지 못했다. 런던 올림픽 메달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대회의 성공이 앞으로 축구선수를 꿈꾸는 수 많은 유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었을 터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남자 성인대표팀은 기나긴 시행착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한 번 외국인 사령탑을 선임하며 봉합했던 문제도, 새 외국인 감독과의 밀월기간도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장기적인 비전을 찾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그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가 유소년 축구의 탄탄한 성장과 성과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올해 U-20 월드컵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그 결과와 현재를 가늠하는 중요한 무대다.
이미지수많은 축구팬들이 이제는 '달라진 한국 축구'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 축구가 중국에까지 밀리는 지경이 되었냐며 발을 동동구르는 이들도 있다. 선수들이 달라졌고, 환경이 달라졌는데 대표팀은 정체만을 반복할 뿐 오히려 팬들이 '축구'를 보며 울고, 웃던 과거의 열정과 환희를 재연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기 저기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K리그의 열악한 상황이나 침체 분위기는 더하다.

물론 대표팀의 성장에 편승해 혹은 오로지 대표팀에만 열광하는 축구 소비 문화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유럽처럼 100년 넘는 역사와 산업 구조를 갖추고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 현실론이 설득력을 얻는 것까지 무턱대고 부정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U-20 월드컵 대회가 한국 축구의 새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대회일 지도 모른다.

현재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U-20 대표팀에 승선한 선수들은 대부분 1997년생 혹은 1998년생이다. 최전방 공격수 조영욱이 1999년생으로 가장 어리다. 선수들 대부분이 2002 월드컵을 리얼 타임으로 경험했고, 새로운 체질의 유소년 축구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축구 환경에서 성장했다. K리그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이미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가 있고, 벌써 해외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유소년 시절을 FC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선수들도 있다.

성적지상주의에 만연해 있던 과거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토양에서 성장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올해 U-20 월드컵에 출전하는 우리 대표팀은 감독부터 선수들까지 대부분이 이전과는 다른 축구를 하고 싶어하고 또 하려하는 자원들이다. 물론 그것은 성인 레벨의 대회나 대표팀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축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기에도 그리고 하는 이들도 즐거운, 화끈한 축구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출범 이후부터 줄곧 신태용호의 근간에 깔려 있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지향점은 우리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대표팀의 새로운 미래와 맞닿아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절체절명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성인 대표팀의 상황과 극단적으로 선을 그을 수는 없겠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선수들이나 보는 팬들 모두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만은 오차 없이 동일하지 않을까. 이것은 성인대표팀을 절망해서도, 부정해서도 아니다. 또 다른 동력을 위해서다.

더욱이 신태용호가 이번 U-20 월드컵을 통해 발견하고 제시하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은 더 먼 훗날 축구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같은 길을 가려는 꿈을 가진 수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마치 2002 월드컵이 지금의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월드컵 우승' 같은 우스갯 소리에 가까운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세계의 내로라 하는 축구 강국들 역시 U-20 같은 대회를 통해 자신들의 꿈과 가능성을 확인한다.

유로 2000, 유로 2004 당시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충격에 빠졌던 독일 축구는 막대한 시간을 들여 자국의 유소년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충격으로부터 10년 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선수들 대부분은 이 시기를 거치며 성장한 유망주들이었다. 상황이나 결과는 다를 수 있을지 몰라도 신태용호의 도전과 미래가 가지고 있는 의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희망은 언제나 새로운 기적에서 시작된다.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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