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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과학은 드라마를 제어하지 못한다

SBS Sports 이은혜 | 2017-06-09 12:48:46

변화를 무조건적으로 즐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안정적인 상황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일 겁니다. 물론 발전을 위해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중순 현재 대회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는 향후 축구사에 기록될 만한 대회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대회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개막 직후부터 크게 회자되고 있는 '비디오판독(Video Assistant Referees System) 시스템'입니다. 정식명칭의 앞 글자들만을 모아 일명 'VAR'로 불리고 있는 비디오판독 시스템은 이번 U-20 월드컵 대회에서 그 어떤 선수, 심판보다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대회 개막 첫날 치러진 A조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부터 비디오판독에 의한 퇴장선수가 나오면서 월드컵 무대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비디오판독 시스템'은 운명의 4강전이 치러진 지난 8일까지 쉬지 않고 맹활약 중입니다.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의 4강전에 등장한 비디오판독 시스템은 무려 '페널티킥'까지 선언하며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사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FIFA가 공식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VAR'에 대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습니다. 하나는 호기심입니다. 비디오판독은 이미 야구나 배구 같은 구기종목에서 일상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지만 축구의 경우 두 종목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정적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경기의 '흐름'입니다. 심판이 가지고 있는 판정 권한 중에는 '홈 어드밴티지'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축구에서 경기 흐름을 끊거나, 끊지 않는 행위는 그 결정에 따라 경기 승패가 좌우될 정도로 중요한 결정입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스스로 'VAR'을 도입하겠다고 한 FIFA의 결정에는 일단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두번째 의문은 당연하게도 '우려'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비디오판독을 통해 오심을 최소화 하겠다는 FIFA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의사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 역시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FIFA는 지난 2016년 12월 일본에서 치러진 클럽월드컵을 통해 비디오판독 시스템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국가대항으로 치르는 국제대회에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이번 U-20 월드컵이 처음입니다.
이미지그런데 클럽 간 경기와 국가대항전에서 '오심'이 가져 올 파장의 후폭풍은 차원이 다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비디오판독으로 인한 판정 번복의 의미와 추후 이어질 논란의 강도 역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U-20 월드컵이 비디오판독 도입 첫 공식대회인데다 국제대회였음에도 상대적으로 잡음이 덜했던 것은 이 대회가 성인 월드컵이 아니라 연령별 대회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물론 연령별 대회이기 때문에 판정기준이 허술하다거나 비디오판독 과정에 시행착오가 허용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성인 월드컵과 비교했을 때 판독결과의 파장이 가져오는 경중이 다르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일례로 U-20 월드컵 16강에서 탈락하는 것과 성인 월드컵 16강에서 탈락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축구계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며, 그 결과가 갖는 영향력과 파장 또한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은 해당 대회 자체의 의미나 대표팀 자체의 절대적인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차이끼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비디오판독으로 인한 판정이 심각한 논란으로 이어지거나 당사자들 간의 거센 항의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의 경기는 이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우려'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합당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기였습니다.

이날 경기를 진행한 폴란드 출신의 주심은 후반 4분 결정적인 '비디오판독'을 시행했습니다. 페널티 박스 앞쪽에서 우루과이 공격수 아구스틴 카노비오의 돌파를 저지하던 베네수엘라 수비수 호수아 메히아스의 태클 상황이었습니다. 주심은 메히아스의 태클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경기를 진행했지만 비디오판독 요청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태클을 당한 뒤 경기장에 쓰러져 있던 우루과이 공격수 카노비오가 스스로 일어나 판정에 수긍하고 플레이까지 속개된 상황이었지만 비디오판독 요청이 들어오면서 경기는 잠시 중단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후 벌어진 장면입니다. 주심은 박스 안쪽에서 일어난 메히아스의 태클이 위험했다고 판정을 번복한 뒤 우루과이의 페널티킥을 선언했습니다. 키커로 나선 델라크루스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0-0이던 전광판의 숫자는 순식간에 1-0으로 뒤바뀌었습니다. 페널티킥을 불지 않은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경기를 진행시켰던 심판부터 PK를 성공시킨 델라크루스까지 경기장 전체가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던 것 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물론 처음으로 시도되는 제도인만큼 축구에서 비디오판독을 진행하는 풍경 자체가 여전히 생경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U-20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표팀들은 설령 판정에 불만을 느껴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자 해도 그 방법조차 낯설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8일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의 경기처럼 비디오판독을 통해 확인한 장면과 그로 인한 판정이 더 석연치 않을 경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는 더욱 의문입니다. 제도 도입 초창기인 만큼 시행착오와 적응기간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이런 장면이 성인 월드컵 무대에서 벌어졌을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 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이미지4년을 준비해 온 무대에서 석연치 않은 심판판정과 오심으로 패배의 멍에를 안아야 하는 것 만큼 불운한 일도 없지만 비디오판독으로도 납득하기 힘든 오심의 피해자가 나온다면 누구보다 권위에 가장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 자신일 겁니다. 더욱이 '판독' 시스템을 천명한 만큼 판정의 공정성이 타격을 입게될 경우 그라운드 위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심판의 권위마저 크게 위협받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축구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한 위협입니다. 90분 내내 쉬지 않고 플레이하는 축구 종목의 특성상 비디오판독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경기 흐름이 끊기게 되면 그 결정 자체가 승패의 향방을 크게 뒤바꿀 수 있고, 이러한 추세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매력과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제도 도입을 고민하며 FIFA가 이러한 부작용들을 간과한 것은 아닙니다. 대회 개막 직전 공식 기자회견까지 열어 비디오판독 시스템의 의의를 설명한 FIFA는 이 제도가 심판의 권위를 더욱 확고히 하고, 오심도 최소화 해 축구의 공정한 가치를 더욱 공고히 지켜가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디오판독 시스템은 여전히 숙제가 많아 보입니다. 판독으로 더욱 애매한 판정이 내려지거나, 판독을 해야할 상황에서는 되려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오류들이 이미 이번 U-20 월드컵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이 만능은 아니라는 사실일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FIFA 역시 비디오판독은 심판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장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비디오판독 끝에 PK골을 넣었던 우루과이를 제압한 것은 반드시 승리하고자 했던 베네수엘라의 의지였습니다. 0-1로 뒤지고 있으면서도, 정규시간 90분이 모두 종료되고 추가시간마저 모두 끝나가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베네수엘라 선수들의 승리를 향한 의지는 그 어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승부를 원점으로 몰고 간 베네수엘라는 결국 연장 30분과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혈투 끝에 자국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대회를 통틀어 첫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FIFA가 과학의 힘을 빌려 축구의 진보를 꿈꾸고 있다면, 베네수엘라는 자신들의 힘으로 자국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과학이 드라마까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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