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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홍명보·박지성' 등판이 갖는 의미

SBS Sports 이은혜 | 2018-01-16 11:30:52
이미지그 어떤 구원투수가 등장해도 채 1이닝을 버티지 못하던 위기. 벼랑 끝에 몰려 있던 한국 축구가 회심의 승부수를 띄웠다. 홍명보, 박지성의 동시 등판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올린 것은 협회 스스로가 2002년의 역사를 재소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것은 추억이나 기적,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히딩크 논란과는 분명히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대한축구협가 8일 오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임원인사 개편안을 전격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홍명보 전무이사, 박지성 유스 본부장 임명이다. 기존 인사들 중에서는 실무진 최고 책임자였던 안기헌 전무이사, 사의를 표명한 김호곤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 이용수 부회장 등이 물러난다. 20년 가까이 다양한 분야에서 협회 실무 전반을 담당해 왔던 전한진 국제팀장이 사무총장이라는 새로운 보직을 맡아 홍명보 전무를 보좌할 예정이다.

주요 보직 및 임원진 선에서 단행된 이번 1차 개편안은 예의 짐작 가능한 결과였기도 하고,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월드컵 본선 9회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음에도 두 달 넘게 눈덩이처럼 불거져 온 '한국 축구 적폐청산' 논의는 결국 협회 스스로가 과거와의 '연(緣)'을 쳐내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 시대가 자의였든 타의였든 완전히 저물고, 새로운 시대로 가게되는 출발점에 서게 된 셈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그 대가는 훗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치명적인 타격이 되어 돌아온다. 홍명보, 박지성이라는 이름이 동시에 등장한 지금의 결단이 축구팬들은 물론 무엇보다 축구인들 스스로에게 생각보다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것은 출사표를 던진 홍명보 전무이사, 박지성 본부장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미지동시에 이것은 단순히 '홍명보·박지성조차 실패하면 한국 축구는 살아날 길이 없다'는, 어떤 의미에서 거만한 가정을 담보로 하는 논리 때문도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만 지금의 사태가 갖고 있는 '본질'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면 지금 대한축구협회에 들어가는 것이 홍명보, 박지성 두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떠한 역사적 사명이라도 그것이 얼마나 숭고한 것이든, 인간은 모두가 같은 권리를 가진 누구나 같은 한 사람의 개인이다. 각자의 우여곡절이나 지금 현재 처한 상황이 어떻든 간에 두 사람의 결정은 어떻게 생각해도 쉬운 결단은 아니다. 아니,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제 공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선수들이 눈과 귀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표팀 성적이 좋았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는 지난 몇 달 동안 수없이 들었던 일갈이었다. 그 누구보다 선수들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축구협회는 물론 협회 산하 기관들, 프로축구연맹, 가장 단적으로는 국가대표팀 그 자체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축구인들이 땀과 열정을 바쳐 이뤄놓은 한국 축구의 가치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진 것은 결국 선수들 스스로가 국가대표의 가치를 이해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었다. 보상은 수단을 이용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 했을 때 돌아오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포츠의 세계에서만큼은 어떤 위기와 고난이 닥쳐도 그 순수한 논리가 살아남아야 하고, 실제로 살아남는다. 거짓된 승부는 그 어떤 감동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현실만큼 감동적인 드라마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홍명보 전무이사, 박지성 본부장 스스로에게도 이번 결정이 벼랑 끝에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생결단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를 바란다. 이 두 사람이 현역 시절 겪은 모든 순간은 한국 축구의 역사 그 자체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그 어떤 인물보다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 역시 모든 축구팬들, 아니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히딩크가 아니라 홍명보, 박지성이 한국 축구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아니 축구협회 스스로가 지금까지 입밖에 내지 못했던 '문제의 정답'일 지도 모른다.

또 한 번 스스로의 인생을 걸고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홍명보 전무이사에게, 그간의 이미지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결코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린 박지성 본부장에게 지금은 우선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진심이 그 누구보다 지금 이 순간 국가대표 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는 선수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은 가장 어려웠던 순간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신태용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 축구가 한국 축구다워 질 때 팬들이 다시 대표팀 경기장으로, K리그로 경기장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내린다는 말이 있다. 한국 축구가 겪은 지난 몇 년 간의 시련이, 과거를 딛고 더 좋은 미래로 가기 위한 필연(必然)이었기를. 퇴보가 아닌 성장을 위한 진통이었기를.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제공]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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