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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피플] 조현우, 한국 축구를 수렁에서 구한 골키퍼

SBS Sports 이은혜 | 2018-07-12 01:40:10

사람은 절망하는 편 보다는 희망하는 쪽이 낫다. 불행을 먼저 가정하는 버릇은 악습으로 이어진다. 슬프기 때문에 한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한숨을 쉬었으니 행복이 한 발 저만치 멀어지고, 슬픔이 더 가까이 왔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3패. 한국 축구는 꿈의 무대라 불리는 월드컵에 나갈 때마다 최악의 가정과 악습을 되풀이 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가는 지금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 한 사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 골키퍼 조현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에이스 손흥민의 존재도 있었고, 5년 짜리 까방권을 얻은 갓영권이나 노이어를 제친 주세종, 월드컵을 통해 접기의 달인으로 등극한 K리그 최대 히트상품 문선민과 국민누나가 된 이용 같은 월드컵 스타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구의 수호신 조현우는 조금 과장을 보태 '클래스'가 다르다. 월드컵 조별리그가 끝나가던 지난 6월 말,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스포츠 뉴스란을 가장 많이 뒤덮었던 이름은 호날두나 메시, 네이마르 같은 선수의 것이 아니었다. '독일'이라는 나라와 '조현우'라는 선수의 이름이었다.

외신에서는 우승후보 1순위, 아니 0순위에 가까웠던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 그리고 그 월드컵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장면의 방아쇠가 된 조현우를 집중조명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차전 스웨덴전과 2차전 멕시코전에 이어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과의 싸움에서까지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선방을 이어간 조현우의 활약은 화제거리였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이제 전국민이 다 아는 스토리가 됐을 정도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독일의 탈락이나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조현우 이야기. 이 한편으론 잔혹하면서도 한편으론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동화의 B면에는 10년 전,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20년 전으로 퇴보할 수도 있었던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참혹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벌어질 수 있었지만 완전히 벌어지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저기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 축구의 위기가 그 내용이다.

"세계 1위를 이기고 왔는데도 계란을 맞아야 하냐"는 누군가의 볼멘소리가 이제는 공허한 울림으로 사라졌지만 조현우가 독일전에서 90분 내내 외질이나 토니 크로스, 베르너, 고레츠카, 케디라, 키미히, 로이스에 이르기까지 그 수많은 그 쟁쟁한 선수들의 슈팅을 온몸을 던져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한국 축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암흑기에 들어서기 직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에이스 손흥민조차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어차피 3패'의 절벽.
이미지한국 축구를 그야말로 기적처럼 수렁에서 구한 골키퍼에게는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슈팅처럼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그가 최대한의 성의를 다 해 응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이 뛰고 있는 K리그 때문이었다. 수려한 언변을 가진 것도, 전세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독일을 막았냐"며 궁금해 한 그 질문에도 딱히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조현우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진심이 있었다. "저 여기, K리그, 대구 FC에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곳에서 뛰었고 여기에서 뛸 겁니다. 그게 바로 비결이에요."

기회가 오면 누구보다 멋지게 국가대표이고 싶었다는 조현우는 자신을 만든 것은 8할, 아니 전부가 K리그 였노라고 자신있게 답했다. 아마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수많은 미디어들과의 인터뷰도, 계속되는 언론 노출도 거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월드컵 만큼이나 빡빡한 일정들이 어쩌면 훈련이나 경기보다 피곤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에게 평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조현우는 월드컵에서 돌아온 직후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이야기했다. "K리그에는 저 말고도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거든요. 다들 걱정 하시는데 대표팀이 잘 되려면 저는 무엇보다 K리그가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많은 팬분들이 오셔서 K리그에 얼마나 좋은 선수들이 많은지 보고 함께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언젠가는 유럽 같은 큰 무대에서 뛰고 싶지만 이번 월드컵 때보다 저는 평소 대구에서 더 멋진 경기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 많이 보러 와 주세요."

세상에 페널티킥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의 불안함보다 큰 공포는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집중력은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불안을 능가한다. 같은 이유가 아닐까. 세계 1위 독일을 상대로도 포기하지 말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골키퍼에게는 어쩌면 독일 국가대표팀 같은 큰 팀을 이긴 경기보다 지금 자신이 뛰고 있는 대구FC가 더 소중한 공간과 시간인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간절한 희망은, 때론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절망을 날려버린다. 축구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러시아 월드컵을 마치고 미디어와 진행된 조현우의 간담회 전문

- 월드컵을 마친 소감
제가 사실 정말 대단한 선수도 아닌데 이렇게 큰 관심을 가져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너무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까 이런 큰 관심이 부담이 될 것이라는 말씀까지 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 너무나 감사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이 관심 가져주시는 만큼 앞으로 K리그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헤어스타일이 특히 화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저도 관심이 많아서 여러가지 스타일을 했었는데 처음에 이 스타일을 하고 나서 아내가 좋아해서 계속 하게된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시도를 해 봤는데 이 머리 스타일이 가장 잘 어울렸다. 그래서 이제는 어린 친구들도 많이 좋아해 주고 해서 아마도 은퇴할 때까지 이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머리카락 색은 제가 개인적으로 다비드 데 헤아 선수도 많이 좋아하고 해서 따라했던 것도 있고 하다.

- 경기 중에 상당히 많이 움직이고 하는데도 헤어스타일이 전혀 변함이 없는 이유는?
신경을 써서 준비한다.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데 왁스와 헤어스프레로 고정을 시키면 된다.(웃음)
이미지- 월드컵 대회 이후 엄청난 인기다. 국내에 돌아와서 실감했는지
사실 귀국하는 직후부터 팬들에게서 엄청난 환호를 받았고 주말에는 잠깐 가족들과 쉬기는 했지만 계속 정신없이 일정을 보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귀국하자마자 방송 3사 인터뷰에도 출연했고 길에서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다. 제가 집이 포항인데 집에 갈 때는 기차에서 내리기가 힘들 정도로 다들 인사를 해 주셔서 그때는 정말 피부로 달라진 게 실감이 나서 적응이 잘 안됐었다.

- 대회를 치르던 러시아 현지에서 아내에게 손편지를 써 큰 화제가 됐다
아내는 저한테 정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다. 저희 대구가 2부 리그로 강등이 됐을 때도 항상 제게 최고다,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해 줬다. 물론 팬분들께서도 늘 힘내라는 말을 해 주시지만 아내는 언제나 곁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줬고 그래서 제가 경기에 나가게 되면 꼭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하루 전에 미리 그 생각들을 편지로 써 놨었다. 정말 저에게는 큰 존재고 저를 있게해 준 고마운 존재다.

- 월드컵 활약으로 인해 아시안게임 발탁에도 관심이 크다. 본인 생각은
물론 저 역시 이제 국민 여러분들께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고 만약 기회가 온다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병역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다. 제가 개인적으로 28살에 상주 상무에 입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었고 그래서 결혼을 일찍한 이유도 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시안게임은 제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감독님이나 구단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한다. 하지만 상주에 가더라고 저는 상주에서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이다.

- 1차전 스웨덴전 발탁 때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골키퍼는 특히 주전경쟁이 심한 포지션 중 하나였는데, 언제 처음 선발 소식을 들었나?
경기 당일 날 호텔에서 미팅을 하는데 그때 처음 들었다. 나도 정말 놀랐다. 물론 승규나 진현이도 좋은 선수고 다들 정말 열심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나 역시 만약 기회가 온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훈련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어필을 했는데 신태용 감독님께서 그런 부분을 많이 인상적으로 봐 주신 것 같다. 특히 1차전 상대였던 스웨덴이 제공권이 강한 팀이라 그런 부분에 집중해서 훈련을 많이 했는데 주효했던 것 같다.

- 월드컵은 워낙 큰 대회다. 긴장을 풀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대표팀이 1인 1실로 생활하다 보니 평소에 다른 동료들과 접촉할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물론 경기 준비를 하는데 있어서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각자 생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뭐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 호텔에 비치된 종이에 아내한테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 것 같다. 그리고 경기 날 내가 선발 명단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편지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아내에게 바로 보냈다.

- 1인 1실 생활로 오히려 대표팀 분위기가 고립된 것은 아닌지?
선수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단정지어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또 필요한 경우에는 뜻이 맞는 몇몇 선수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고 혼자 시간을 정리하며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선수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차두리 코치님이 일일이 선수들 방을 찾아다니시면서 이야기도 듣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시고 해서 그런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던 것 같다. 각자마다 개인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1인 1실이 그런 부분에서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미지- 유럽 구단들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은?
당연히 저 역시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군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리고 대구 구단과도 이야기를 해 봐야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해외에 나가서 아시아 골키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그런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쁘다. 승규나 진현이와도 이야기했지만 한국 선수도, 아시아 선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어릴 적 롤모델로 삼았던 선수가 있나
98 프랑스월드컵 때 김병지 선수를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런 꿈을 키웠었다. 김병지 선배님의 그런 자신감이 정말 좋았었다. 이번에 상대한 독일 노이어 선수도 우리와 경기에서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나는 자신감 있는 과감한 플레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평소에도 많이 이야기 했지만 스페인 다비드 데헤아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 러시아에 가면서 데헤아와 한 번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내심 하면서 갔는데 만나지는 못했다.(웃음) 그래고 세계적으로 주목 받게 되어서 데헤아가 저희 대구FC 구단 SNS에 좋아요까지 눌러주고 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 한때 2부로까지 강등됐던 K리그 소속팀 선수가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됐다. 후배들에게는 희망의 아이콘이 됐는데, 조언을 해 준다면
축구를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면 끝이다. 나도 사실 대표팀에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하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즐기면서 준비했다. 힘든 상황도 있겠지만 축구를 즐기며 최선을 다 했으면 좋겠다.

- K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수를 꼽는다면
월드컵은 이제 과거다. K리그에서도 월드컵 때 못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 두 경기가 아니라 팬 분들이 꾸준히 경기장에 오셨으면 좋겠다. K리그에는 저 말고도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다. 공격수 중에서는 이번에 월드컵에 함께 갔었던 문선민 선수가 두렵다. 정말 가진 것이 많은 선수인데 앞으로 만나면 어떤 플레이를 할 지 기데된다. 그리고 흥민이는 은퇴하기 전에 한 번 쯤은 K리그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K리그에서 붙는다면 흥민이도 두려울 것 같다.(웃음)

- 소속팀 대구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 같다.
월드컵 기간 중에 어떤 외국 기자가 독일전이 끝나고 이런 질문을 했었다. 오늘 경기가 당신의 인생경기가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이미 나의 소속팀 대구에서 이보다 더 짜릿한 인생경기를 한 적이 많다고 답했다. 나에게는 월드컵 같은 큰 경기도 중요하지만 대구에서 치르는 한 경기, 한 경기도 정말 소중하다. 월드컵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게 되어 너무 감사하지만 앞으로도 대구에서 변함없이 매 경기 최선을 다 하도록 준비하겠다.

- 한국 축구는 월드컵 때마다 같은 위기를 반복한다. 현역 선수로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뭐였나
1차전 스웨덴전 때 경기를 앞두고 많은 선수들이 크게 긴장했었다. 아무래도 큰 대회, 중요한 경기이다보니 선수들이 크게 위축된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뛰어 보니 상대팀도 많이 위축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독일전도 그랬다. 선수들하고도 이야기를 했고, 흥민이도 두려워 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한국도 할 수 있다고, 이번 독일전을 이기면서 선수들은 정말 많은 자신감을 얻고 돌아왔다. 아시아 선수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대표팀이 평소에도 조금 더 자신있게, 선수들이 어떤 상대와 붙어도 자신있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사진= 대구FC,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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